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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작은 것에 대한 예찬론

나는 키 크고 덩치 큰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도 작은 나를 싫어하겠지만, 키 작은 우리 친정아버지도 나와 같았다. 친정 언니가 결혼한다고 데려온 남자는 키도 컸지만 덩치가 너무 컸다. 그를 올려다보며 인상 쓰던 아버지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작은 키로 험난한 세상을 단단히 버티고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키 큰 남자의 시선이 아버지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건 아닐까? 사람 됨됨이도 보지 않고 무조건 키 큰 사람이 싫어지는 심리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너무 크면 내가 숨 쉴 공간이 좁아지는 느낌이다. 나를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으로 자리를 뜨고 싶다.   나는 길가에 핀 크고 화려한 꽃보다는 앙증맞은 작고 소박한 꽃들을 좋아한다. 화려한 꽃은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는다. 있는 듯 없는 듯 핀 작은 꽃들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 애처롭다. 작은 것을 보면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애착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큰 것은 그냥 스쳐도 작은 것을 보면 지나치지 않고 멈춰 서서 자세히 살피며 말을 걸고 싶은 심리는 아마 동병상련 때문일 것이다.     난 굵은 선보다 가는 선을 좋아한다. 그래서였을까? 판화 중에서 가는 선을 기본 기법으로 화면을 만들어 가는 동판화를 전공했다. 나의 작은 손으로 가는 선이 그어질 때 희열을 느낀다. 작은 캔버스 위에 그릴 때 더 집중하고 파고들어 내 마음을 전달하면 애정 어린 작업이 나온다. 작고 가는 선으로 만들어진 내 작품은 거창한 장소에 걸리는 것보다는 화장실 가는 통로라던가 복도 끝 벽에 걸리면 작품은 제자리를 찾은 듯 차분해진다.     볼일 보러 가면서 본 듯 만 듯 스치거나 긴 좁은 복도를 지날 때 누군가가 슬쩍 봐주면 제자리를 조용히 지키던 그림은 밝은 표정으로 반긴다.     내 이름 영어는 전부 소문자 sooim lee다. 얼마 전 갤러리에서 만난 여자로부터 ‘이름을 왜 소문자로만 쓰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전에도 서너 번 내 이름을 잘못 기재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도 받았다. 대문자보다는 소문자를 선호해서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지 않는 작은 모습인 나에 대한 합리화인 것 같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예찬론 우리 친정아버지 아버지 얼굴 이름 영어

2025-03-20

[글마당] 여름이 간다

긴 낮이 고개를 넘어갈 즈음 나는 대충 차려입고 밖으로 나간다. 한여름 밤에 묻혀 걷고 싶어서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치맛자락 펄럭이는 바람과 함께 걸으면 온전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여름이 슬슬 갈 준비를 하는 듯 엉덩이를 들썩인다. 떠나려는 여름이 야속하고 서운하다. 여름이 가면 낮이 줄어들고 밤이 빨리 온다.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들어가는, 좋아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느낌이다.     난 더위는 타지 않지만, 추위를 몹시 탄다. 더운 곳으로는 여행을 가도 추운 곳으로는 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많은 크루즈를 타고 이곳저곳 돌아다녔어도 알래스카는 가지 않았다. 알래스카라는 이름만 들어도 추위가 몰려오는 느낌이다   사춘기부터 나는 가을을 무척이나 탔다. 가을이 오는 것이 무서웠다. 화기애애한 모임이 끝나고 혼자 되어 어두움으로 들어가 눕는듯했다. 엄마는 가을이 오면 시작하는 내 우울함을 걱정했다. 용돈을 듬뿍 주며 친구 집에 가서 놀다 오라고 했다. 어찌 그리도 내 맘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것처럼 나를 잘 아는지. 엄마와 살던 것보다 더 오래 산 남편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는지   “마누라는 쾌활 과다증이라니까.”   나라고 우울증이 없을까? 엄마는 내가 표현하지 않아도 내가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지 성질을 왜 부리는지 다 알고 대처해줬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 당연히 그러려니 하며 살지만, 아쉽다.   오래전, 남편이 서울에 있는 모 대학 강의하러 가서 우리 친정아버지의 옥탑방에서 1년간 기생했다.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서 장인어른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하곤 한다. 남편은 생전 화내지 않고 상냥한 우리 아버지를 보며 영향을 받았는지 더러운 성질 줄어들고 변했다. 성질부리고 짜증 내봐야 자기 손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나대로 절대로 남편은 우리 엄마와 아버지 같지 않기에 기대하지 않고 살았다. 남편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에 그와 오랜 세월 큰 싸움 없이 살아 아직도 붙어있나 보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여름 오래전 남편 우리 친정아버지 우리 엄마

202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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